1. 왜 ‘역할’로 죄명이 갈리는가
보이스피싱은 고도의 점조직으로 운영되어 각자의 역할이 명확히 분담됩니다. 그런데 형사책임은 ‘조직에 속했다’는 사실만으로 일률적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실제로 한 행위(actus reus)가 무엇이냐에 따라, 같은 조직원이라도 적용 법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크게 세 축으로 죄명이 결정됩니다.
기본 사기 라인 — 편취행위 자체에 대한 책임: 형법상 사기(제347조)·컴퓨터등사용사기(제347조의2),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15조의2, 그리고 방조(형법 제32조)
인프라·수단 라인 — 범행 도구를 공급·유지한 책임: 전자금융거래법(대포통장·접근매체), 전기통신사업법(대포폰·유심), 금융실명법(차명계좌)
자금세탁·자금이동 라인 — 범죄수익을 은닉·이전한 책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외국환거래법
조직 라인 — 단체성이 인정될 때 추가되는 가중책임: 형법 제114조(범죄단체 조직·가입·활동)

2. 적용 법률 한눈에 보기
| 법률 | 핵심 조문 | 규율 대상 행위 | 법정형(개요) |
|---|---|---|---|
| 형법 (사기) | 제347조 | 피해자를 기망하여 재물·이익 편취 | 10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 |
| 형법 (컴퓨터등사용사기) | 제347조의2 |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정보·부정명령 입력하여 이익 취득 | 10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 |
| 형법 (방조) | 제32조 | 정범의 범행을 용이하게 하는 방조 | 정범 형의 필요적 감경 |
| 형법 (범죄단체) | 제114조 | 범죄단체 조직·가입·활동 | 목적한 죄에 정한 형(사기의 경우 무거운 형) |
| 통신사기피해환급법 | 제15조의2 | 전기통신금융사기 행위 자체 | 1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범죄수익 3~5배 벌금(병과 가능), 미수·상습 가중 |
| 전자금융거래법 | 제6조 제3항 / 제49조 제4항 | 접근매체(대포통장·카드·OTP 등) 양도·양수·대여·보관·전달·유통 | 5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 |
| 전기통신사업법 | 제30조 / 제97조 | 타인 통신용 제공(대포폰·유심 개통 제공) | 제97조 벌칙(3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천만원 이하 벌금 등) |
| 금융실명법 | 제3조 제3항·제4항 / 제6조 | 탈법목적 차명 금융거래 및 그 알선·중개 |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 |
| 범죄수익은닉규제법 | 제3조 / 제4조 | 범죄수익 은닉·가장 / 정황을 알며 수수 | 은닉·가장 5년 이하·3천만원 이하 / 수수 3년 이하·2천만원 이하 |
| 외국환거래법 | 제8조·제27조 등 | 무등록 외국환업무(환전소 통한 자금세탁·해외이전) | 벌칙 규정에 따른 징역·벌금 |
법정형은 현행 기준 개요이며, 실제 사건에서는 개정·경합·가중감경으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조문번호는 국가법령정보 현행본 기준으로 확인했습니다.
3. 최근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어떻게 적용되는가 — 4대 행위유형
과거 실무에서는 보이스피싱 실행행위를 대부분 형법상 사기(제347조)로만 의율하고,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접근매체·정보처리장치 조작 등 특정 수단 행위만 처벌했습니다. 그런데 2023. 5. 16. 개정(2023. 11. 17. 시행)으로 두 가지가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1) 정의 확대 — ‘송금·이체’를 넘어 ‘교부·출금’까지
제2조 제2호는 ‘전기통신금융사기’를 전기통신을 이용해 타인을 기망·공갈하여 자금·재산상 이익을 취하는 다음 네 가지 행위유형으로 정의합니다.
| 구분 | 조문 | 행위유형 | 전형적 수법·역할 |
|---|---|---|---|
| (가)목 | 제2조 제2호 가 | 송금·이체하도록 하는 행위 | 계좌이체 유도(기관사칭·대출빙자) |
| (나)목 | 제2조 제2호 나 | 개인정보를 알아내어 송금·이체하는 행위 | 스미싱·파밍·메모리해킹 등 정보탈취형 |
| (다)목 | 제2조 제2호 다 | 자금을 교부받거나 교부하도록 하는 행위 | 대면편취형 — 현금수거책이 직접 만나 수령 |
| (라)목 | 제2조 제2호 라 | 자금을 출금하거나 출금하도록 하는 행위 | 출금·인출형 — ATM 인출책, 피해자 직접 출금 유도 |
핵심은 (다)·(라)목의 신설입니다. 종전에는 ‘송금·이체’만 정의에 있어, 피해자를 직접 만나 현금을 받는 대면편취형이나 출금형이 이 법의 처벌·피해환급 범위에서 빠졌습니다. 개정으로 이들이 정의에 포섭되면서, 현금수거책·인출책의 행위도 통신사기피해환급법으로 직접 규율됩니다.
단서(적용 제외/포함):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제외됩니다(예: 물품거래·투자·로맨스 등을 가장한 사기는 형법 사기로 의율). 다만 ‘대출의 제공·알선·중개를 가장한 행위'(대출빙자형)는 명시적으로 포함됩니다.
(2) 벌칙 전환 — ‘수단 행위’에서 ‘사기 실행행위 자체’ 처벌로
개정 전 제15조의2는 ‘전기통신금융사기를 목적으로 정보처리장치에 정보·명령을 입력하는 행위’ 같은 구체적 수단 행위를 구성요건으로 삼아 처벌했습니다(10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 개정 후에는 ‘전기통신금융사기를 행한 자’ 그 자체를 처벌 대상으로 바꾸고, 법정형을 1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범죄수익의 3배 이상 5배 이하 벌금(병과 가능)으로 대폭 상향했으며 미수·상습가중 규정도 두었습니다.
대법원 2024. 9. 27. 선고 2024도7516 판결은, 구법의 구체적 수단 행위(정보처리장치 입력 등)가 신법의 ‘전기통신금융사기 행위’에 당연히 포함되므로 개정으로 형이 폐지된 것이 아니라 무거워진 것이라고 보아, 신법 시행 전 행위에는 행위시법(구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즉 개정은 처벌 공백을 만든 것이 아니라 처벌 범위를 넓히고 형을 강화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3) 이후에도 계속 강화되는 흐름
2024. 8. 28. 시행분에서 현행 제15조의2(1년 이상 유기징역 등)가 유지·정비되었습니다.
2026. 8. 4. 시행 개정으로 ‘사기관련의심계좌‘ 개념(제2조 제8호)이 신설되어, 피해금 입·출금에 이용되는 것으로 의심되는 계좌까지 지급정지·모니터링 대상이 확대됩니다.
2026. 10. 1. 부터는 법 제명이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자산 환급에 관한 특별법」으로 변경될 예정으로, 환급 대상이 ‘피해금’에서 ‘피해자산’으로 넓어집니다.
(4) 역할 유형과의 연결
이 4대 행위유형은 아래 4·5절의 역할 분류와 다음과 같이 맞물립니다.
(가)·(나)목(송금·이체·정보탈취형) → 유형 A(기망 실행)·C(인출·송금·세탁)
(다)목(대면편취/교부형) → 유형 B(수거·전달) — 현금수거책이 이 법으로 직접 의율되는 근거
(라)목(출금·인출형) → 유형 C(인출) — ATM 인출책
어느 유형이든 실행에 가담하면 제15조의2(1년 이상 유기징역)가 형법상 사기와 함께 적용되며, 단체성이 인정되면 형법 제114조가 추가됩니다.
4. 역할 유형별 분류
유형 A. 기망 실행형 — 콜센터·유인책(1선·2선), 관리책의 교육·지시
하는 일: 정부기관·금융기관·유통업체 직원 등을 사칭해 피해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거짓말로 속이는(기망) 핵심 실행 역할. ‘바람잡이(1선)’와 최종 요구(2선)로 세분화되기도 함.
적용 죄명
사기(형법 제347조) +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15조의2 위반 — 편취행위를 적극적으로 실행한 정범
범죄단체 가입·활동(형법 제114조) — 해외(캄보디아·중국 등)에 물적 시설을 갖추고, 위계질서·내부규칙(벌금·외출통제 등)·수익분배 구조를 갖춘 ‘범죄 목적 단체’에 합류해 활동한 경우 추가 적용. 단순 가담자와 구별되는 가장 무거운 라인.
포인트: 기망의 최전선에 있으므로 공동정범 성립이 명확하고, 단체성이 인정되면 범죄단체죄가 병과되어 형이 크게 높아집니다.
유형 B. 수거·전달형 — 현금수거책, 전달책
하는 일: 사칭 조직원의 지시로 피해자를 노상 등에서 직접 대면해 현금을 건네받거나, 은닉된 돈을 회수해 상위 조직원에게 전달.
적용 죄명
사기(형법 제347조) 공동정범 또는 방조 +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15조의2 위반 — 편취의 실행행위 일부(수거)를 분담. 기여도·인식 정도에 따라 공동정범/방조가 갈림.
포인트: 전체 범행 계획을 몰랐더라도, 불법한 돈을 수거한다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면 공범 책임을 집니다. “단순 심부름인 줄 알았다”는 변소가 자주 나오지만, 대면 수거·비정상적 보수·현금 다발 등 정황에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는 경향입니다.
유형 C. 인출·송금·세탁형 — 인출책, 송금책(전달책)
하는 일: 피해자가 대포통장에 입금한 돈을 ATM에서 인출하거나, 다른 조직원·환전소 계좌로 재이체(송금)하여 자금 흐름을 끊고 세탁.
적용 죄명
사기 또는 사기방조 +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15조의2 위반 — 편취금 이전으로 범행을 완성·용이하게 함
컴퓨터등사용사기(형법 제347조의2) — 스미싱 악성코드로 탈취한 정보를 시스템에 입력·조작해 무단 이체하는 ‘해킹형’ 송금에 가담한 경우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제3조(은닉·가장) / 제4조(수수) — 범죄수익의 출처·귀속을 가장하거나, 정황을 알면서 수수·이전한 경우
포인트: 자금이 여러 계좌를 거치도록 ‘재송금’하는 것 자체가 은닉·가장에 해당할 수 있어, 사기 라인 + 자금세탁 라인이 함께 걸리는 유형입니다.
유형 D. 인프라·수단 공급형 — 대포통장·접근매체 제공/모집, 대포폰·유심 제공, 중계기 관리
하는 일: 범행에 쓸 통장·체크카드·OTP 등 접근매체, 대포폰·유심을 수집·개통·제공하거나, 해외 발신을 국내번호로 조작하는 중계기(중계소)를 관리.
적용 죄명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제49조 제4항 — 접근매체(대포통장 등)를 양도·양수·대여·보관·전달·유통한 경우
전기통신사업법 제30조·제97조 — 타인의 통신용으로 유심·회선을 개통해 제공(대포폰)한 경우
유심 제공 시에도 경우에 따라 보이스피싱 혐의.. : 네이버블로그
금융실명법 제3조 제3항·제4항, 제6조 — 탈법 목적의 차명 금융거래를 하거나 이를 알선·중개한 경우
사기방조(형법 제32조) — 위 수단이 실제 사기 범행에 사용될 것을 알면서 제공해 범행을 용이하게 한 경우
포인트: 직접 기망하지 않아도, “제공한 도구가 사기에 쓰일 것을 알았는가(미필적 고의 포함)”가 방조 성립의 핵심입니다. 몰랐다면 전자금융거래법·전기통신사업법 등 개별 특별법 위반만 남고, 알았다면 사기방조가 더해집니다.
유형 E. 환전·자금이동형 — 환전소, 해외송금책
하는 일: 국내에서 세탁된 자금을 환전소 계좌를 통해 환전·해외 이전하여 총책 등에게 전달.
적용 죄명
외국환거래법(무등록 외국환업무 등) — 등록 없이 환전·해외송금 업무를 영위한 경우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제3조·제4조 — 범죄수익임을 알면서 이전·수수·가장한 경우
포인트: 자금이 국경을 넘는 마지막 단계로, 외국환거래법 위반과 자금세탁이 결합합니다.
보이스피싱, 나는 몰랐는데 왜 처벌받나요? —.. : 네이버블로그
유형 F. 총괄·관리형 — 총책, 관리책
하는 일: 총책은 해외 거점에서 범행 전체를 총괄하고 점조직 간 연락을 담당. 관리책은 하부 조직원을 관리하고 기망 수법·수거 방법을 교육·지시.
적용 죄명
범죄단체 조직(형법 제114조) — 조직을 구성·지휘한 최상위 책임
사기(제347조)·컴퓨터등사용사기(제347조의2)·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15조의2 — 전체 범행에 대한 공모공동정범
하부 조직이 저지른 개별 범행 전반에 대해 포괄적 책임
포인트: 직접 전화하거나 돈을 만지지 않아도, 공모와 기능적 행위지배가 인정되면 전체 편취액에 대한 공동정범 책임을 집니다. 단체성이 인정되면 조직죄가 더해져 가장 무겁게 처벌됩니다.
5. 죄명별 처벌 요약
| 죄명 | 근거 조문 | 주로 걸리는 유형 |
|---|---|---|
| 사기 | 형법 제347조 | A·B·C·F |
| 컴퓨터등사용사기 | 형법 제347조의2 | C(해킹·스미싱형) |
| 사기방조 | 형법 제32조 | B·D(인식 있는 조력자) |
| 범죄단체 조직·가입·활동 | 형법 제114조 | A·F(단체성 인정 시) |
| 전기통신금융사기 행위 |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15조의2 | A·B·C·F |
| 접근매체 거래 |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제49조 | D |
| 대포폰·유심 제공 | 전기통신사업법 제30조·제97조 | D |
| 탈법 차명 금융거래 | 금융실명법 제3조·제6조 | D |
| 범죄수익 은닉·가장·수수 |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제3조·제4조 | C·E |
| 무등록 외국환업무 | 외국환거래법 제8조·제27조 등 | E |
6. 공범·고의 판단의 실무 포인트
공동정범 vs 방조: 편취의 실행행위(기망·수거·인출)를 분담하고 기능적 행위지배가 있으면 공동정범, 단지 수단을 제공해 조력한 데 그치면 방조로 평가되는 경향. 기여도·역할·보수 구조가 판단 기준.
미필적 고의: “무슨 범행인지 구체적으로 몰랐다”는 항변이 흔하지만, 비정상적 고액 보수, 대면 현금 수거, 신분 위장, 지시의 은밀성 등 정황에서 “불법 자금임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는 경우가 많음.
죄수·경합: 하나의 가담 행위가 여러 법률에 동시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아(예: 인출책 = 사기 + 컴퓨터등사용사기 + 범죄수익은닉 +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상상적 경합·실체적 경합 판단이 양형에 크게 작용.
개별 특별법 단독 vs 사기방조 병합: 인프라 공급형(유형 D)은 ‘사기에 쓰일 것을 알았는지’에 따라 전자금융거래법·전기통신사업법 단독 처벌에 그치느냐, 사기방조가 추가되느냐가 갈림 — 변론의 핵심 쟁점.
7. 정리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죄명은 ‘지위’가 아니라 ‘행위’로 결정됩니다. 같은 조직원이라도 기망을 했는지(A), 돈을 받았는지(B), 옮겼는지(C), 도구를 댔는지(D), 국외로 빼돌렸는지(E), 총괄했는지(F)에 따라 사기·컴퓨터등사용사기·통신사기피해환급법·전자금융거래법·전기통신사업법·금융실명법·범죄수익은닉규제법·외국환거래법이 조합되어 적용됩니다. 여기에 조직의 단체성이 인정되면 형법 제114조 범죄단체죄가 얹혀 형이 크게 가중됩니다.
변론 실무에서는 ① 어떤 행위를 실제로 분담했는가(공동정범/방조 구분), ② 그 행위 시점에 불법성에 대한 인식(미필적 고의 포함)이 있었는가, ③ 여러 죄가 경합할 때 죄수 관계가 어떻게 정리되는가 — 이 세 가지가 양형을 가르는 핵심 축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