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보다 절차가 문제 될 때
외국인에게 출국명령이나 강제퇴거명령, 보호(구금) 처분이 내려지면 대부분 “위반 사실이 있었는가”부터 다툽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위반 사실 자체를 다투지 않고도 처분이 취소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분을 내리는 절차 자체에 흠이 있었던 경우입니다.
출입국관리 행정은 국가 주권의 본질적 영역이어서 폭넓은 재량이 인정되지만, 그 재량도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정당화됩니다.
영주자격(F-5) 취소, 상실 사유와 대응방법 : 네이버 블로그
사례 1 — 보호명령서 자체가 잘못된 서류였다
대구지방법원은 2022년, 시리아 국적 외국인에 대한 보호명령을 취소했습니다. 출입국관서가 강제퇴거명령과 함께 보호명령을 내리면서, 실제로는 “강제퇴거집행을 위한 보호명령서”가 아니라 “심사결정을 위한 보호명령서”를 잘못 출력해 원고에게 제시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두 서류는 기재 내용 자체가 다릅니다.
법원은 “두 문서를 동일한 효력이 있는 문서로 볼 수 없고, 담당 공무원이 강제퇴거명령서를 보여주며 구두로 설명했다 하더라도 하자가 치유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처분의 실체적 이유가 분명해 보여도, 정해진 서식과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그 자체로 취소 사유가 된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사례 2 — 선행 처분 없이는 후행 처분도 없다
서울행정법원은 2022년, 전자금융거래법위반으로 선고유예가 확정된 중국 국적 F-4 체류자에 대한 출국명령을 취소했습니다. 처분청은 원고의 체류자격이 취소되었음을 전제로 출국명령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그 전제가 되는 체류자격취소처분 자체가 적법하게 성립·통지된 사실이 없었습니다. 통고서의 ‘위반내용’란에 “취소 예정”이라는 기재만 있었을 뿐, 정식 취소처분서나 통지서는 발급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처분은 주체·내용·절차·형식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외부에 표시되어야 성립한다”는 법리를 적용해, 존재하지 않는 선행처분을 전제로 한 출국명령 역시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같은 사건에서 원고가 함께 주장한 ‘사전통지·의견진술 기회 미부여’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이미 통고서를 열람·서명하는 등 실질적인 소명 기회가 있었다고 법원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절차 위반 주장은 형식만으로 바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방어권이 침해되었는지가 함께 심사됩니다.
사례 3 — 심사 과정에서 박해국에 신원을 노출한 사실조회
절차 위반은 행정소송뿐 아니라 형사재판의 증거능력도 좌우합니다. 대법원은 2024년, 파키스탄 국적 난민신청자가 제출한 신고접수증의 진위를 확인한다는 명분으로, 현지 대한민국대사관이 본인 동의 없이 그의 인적사항과 구체적 박해 내용을 그대로 파키스탄 외교부·경찰청에 조회한 사건을 다뤘습니다.
난민법 제17조는 난민신청자의 인적사항과 신청 정보를 출신국에 제공하지 못하도록 정한 강행규정인데,
대법원은 이를 위반해 얻은 사실조회 회신·공문은 위법수집증거이고 예외적으로 증거 사용이 허용되는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이 증거에 의존한 출입국관리법위반·위조사문서행사 공소사실에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조사 과정의 절차 위반이 처분이 아니라 형사처벌 자체를 막은 사례입니다.
사례 4 — 강제퇴거명령의 “송환국 지정”도 심사 대상이다
강제퇴거명령은 누구를, 언제 내보내는지만이 아니라 어디로 보내는지도 처분의 일부입니다. 인천지방법원은 2023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반대 활동을 해온 미얀마 국적자에게 송환국을 본국인 ‘미얀마’로 지정해 내린 강제퇴거명령을 취소했습니다.
원고가 처분 당시 난민신청자 지위를 유지하지 않아 난민협약·난민법상 강제송환금지 원칙은 적용되지 않았지만, 법원은 대한민국이 가입한 고문방지협약상 절대적 강제송환금지 원칙을 근거로 “미얀마로 송환될 경우 고문 등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도 피고가 송환국 지정에 관한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송환국 지정이라는 처분의 한 부분만 놓고 보아도 그 심사에 결함이 있으면 처분 전체가 위법해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출국명령·출국기한유예처럼 더 가벼운 대안이 있었는데도 이를 검토하지 않은 점이 함께 지적됐습니다.
사례 5 — 심사·구금 과정에서의 변호인 조력권
검거·심사 단계의 절차적 권리는 최근 더 넓게 인정되는 흐름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018년 송환대기실 난민신청자에 대한 변호인 접견 거부를 위헌으로 판단하면서, “헌법 제12조 제4항의 ‘구속’은 사법절차상 구속뿐 아니라 행정절차상 구속도 포함하므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행정절차에서 구속된 사람에게도 즉시 보장된다”고 밝혔습니다.
입국불허 이의신청 사건에도 적용됐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행정심판위원회는 2026년 7월, “출입이 통제된 채 이의신청을 기다리는 입국불허 외국인도 행정절차상 구속 상태에 해당해 변호인 조력권의 주체가 되고, 언어 소통의 어려움과 24시간 내 서면 제출 원칙을 고려하면 변호인의 구두 소명 기회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이 쟁점을 충분히 심리하지 않은 인권위의 기각결정을 취소하고 재심리를 명했습니다.
사례 6 — 보호기간에 상한이 없던 것 자체가 위헌이었다
헌법재판소는 2023년, 강제퇴거 대상자에 대한 보호기간에 상한을 두지 않은 출입국관리법 제63조 제1항이 신체의 자유와 적법절차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불합치를 선고했습니다. 보호기간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어 사실상 무기한 구금이 가능하고, 보호가 계속 필요한지를 법원 등 제3자가 심사하는 절차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앞서 2018년에는 같은 쟁점에서 위헌의견이 5명으로 정족수(6명)에 못 미쳐 합헌으로 선언된 바 있어, 5년 만에 판단이 뒤집힌 셈입니다. 이후 법 개정으로 보호기간은 원칙 9개월, 난민신청자 등은 최대 20개월로 상한이 생겼고, 연장 여부를 심사하는 보호연장심사위원회도 법무부 산하에 신설됐습니다.
이 쟁점이 실제 사건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법원마다 결론이 갈립니다. 보이스피싱 범죄로 징역형을 확정받고 가석방된 난민인정자에게 강제퇴거명령과 보호명령을 내린 사건에서, 1심은 기간 상한이 없던 구법 제63조 제1항의 위헌성을 이유로 보호명령을 위법으로 판단했지만, 항소심은 강제퇴거명령과 보호명령 모두 적법하다고 보아 결론을 뒤집었습니다.
사례 7 — 영주자격 취소, 통지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영주자격(F-5) 취소는 다른 체류자격 취소보다 절차 요건이 더 무겁습니다. 출입국관리법은 영주자격을 취소하려면 대상자에게 출석 및 의견진술 기회를 주어야 하고, 취소 사유와 출석 일시·장소를 출석일 7일 전까지 통지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사례 2에서 확립된 “처분은 주체·내용·절차·형식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외부에 표시되어야 성립한다”는 기준은 영주자격 취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담당공무원이 구두로만 취소 사실을 알리고 정식 취소통지서를 발급하지 않았다면, 그 취소처분은 성립 자체가 인정되지 않거나 절차적 하자가 중대·명백하여 무효로 판단될 여지가 큽니다. 실무에서도 배우자와 이혼 후 재혼한 영주자격자에게 정식 서면 통지 없이 구두로만 취소를 고지한 사안에서, 이러한 절차 위반을 이유로 취소처분이 무효로 판단된 사례가 있습니다. 영주자격은 한 번 취득하면 체류기간 갱신 없이 유지되는 만큼, 취소 통지 하나가 누락되어도 다툴 여지가 크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법령이 요구하는 순서]
사유 인지
↓
조사 (필요 시 조사 출석)
↓
서면 사전통지
· 취소하려는 사유
· 출석 일시·장소
· 출석일 7일 전까지
↓
의견진술 (출석 또는 서면)
↓
내부 결정
↓
「체류 허가 취소 통지서」 교부 ← 취소처분 성립
↓
「출국명령서」 교부 ← 별도 처분
※ 일반체류자격 부여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출국명령 대상에서 제외
실무에서 확인해야 할 것
절차 위반을 다투려면 다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처분서·보호명령서 등 서식이 사안에 맞는 정확한 문서인지, 처분의 전제가 된 선행 처분(체류자격취소 등)이 실제로 존재하고 적법하게 통지되었는지, 단속·긴급보호 당시 미란다 원칙·이의신청권·영사통보권이 고지되었는지와 그 기록이 남아 있는지, 심사·보호 과정에서 변호인 조력을 요청했는데 거부되지는 않았는지, 난민신청자라면 본인 동의 없는 출신국 사실조회나 정보 노출이 없었는지, 강제퇴거명령이라면 송환국 지정 사유가 구체적으로 검토됐는지, 보호(구금) 중이라면 개정법상 기간 상한(9개월·난민신청자 등 20개월)과 보호연장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쳤는지, 그리고 영주자격 취소라면 출석 7일 전 서면 통지와 의견진술 기회가 실제로 주어졌는지입니다. 다만 법원은 절차 위반을 형식적으로만 판단하지 않고 실제 방어 기회가 있었는지를 함께 봅니다.
마무리
출국명령·강제퇴거·보호는 실체적 사유뿐 아니라 그 처분에 이르는 과정 전체가 심사 대상입니다. 서류 하나, 통지 하나가 누락되어도 처분 전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법률사무소 어스(홍대입구역)가 검거·조사 단계부터 처분에 이르기까지 절차 전반을 검토해 대응합니다. ☎ 02-336-2736
